콰시언트 사이언스(Quotient Sciences)가 인공지능을 이용해 제형을 설계한 신약의 임상 1상에 돌입했다. 약물 제형 개발에 AI가 개입해 실제로 임상 단계까지 진입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사측은 설명한다.

이번 연구는 영국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RA)의 승인 하에 콰시언트의 영국 현지 시설에서 건강한 성인 자원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며, 경구용 고형제의 안전성과 약동학적 특성을 평가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프로젝트의 근본적인 목적이 단순히 약물 하나의 효능을 입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트레피드 랩스(Intrepid Labs)의 고도화된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끌어들여 제형 설계의 경우의 수를 빠르게 탐색하고 최적화함으로써, 신약 개발 과정 전반의 의사결정을 얼마나 앞당길 수 있는지 그 잠재력을 증명하는 것이 이들의 진짜 목표다.

콰시언트의 최고과학책임자인 앤디 루이스의 말을 빌리자면, 강력한 머신러닝과 깊이 있는 과학적 전문성의 결합은 꽤 영리한 베팅이다. 자사의 중개약학(Translational Pharmaceutics) 플랫폼에 이러한 AI 기반의 데이터 중심적 접근이 더해지면, 제약사들은 훨씬 이른 시점에 리스크를 덜어내고 임상 성공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

사실 이런 기술적 도약이 실험실 안에서만 고립되어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2026년에 접어들며 임상시험 시장 전체의 판도가 꽤 노골적으로 속도전과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며 반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의 빙하기가 무색하게 올해 1분기 임상 1~3상 착수 건수는 전년 대비 13%나 뛰었다. 스폰서들의 확신이 시장에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방증이다. 임상 착수 후 프로젝트가 엎어지는 비율은 눈에 띄게 줄었고, 전반적인 초기 준비 기간 역시 단축되고 있다. 자금 흐름도 심상치 않다. 올해 바이오텍들이 끌어모은 자금의 중간값만 2억 8,750만 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작년 동기 대비 두 배를 훌쩍 넘는 수치이자 2021년 이후 최고치다. 보통 자금 조달이 이뤄지고 반년 정도 시차를 두고 임상이 늘어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훈풍은 일시적인 요행이 아니다.

이러한 시장의 가속도, 그중에서도 가장 맹렬하게 속도를 내는 구간은 임상 2상이다. 보통 소규모 스폰서들이 데이터 검증이나 인프라에 본격적으로 지갑을 여는 시기가 바로 이때다. 하지만 여기서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위험 기반 품질 관리(RBQM)를 수백 개의 글로벌 사이트를 굴리는 빅파마들의 전유물쯤으로 여기는 태도다. 15개 사이트 남짓 돌아가는 2b상 연구를 진행하는 소규모 바이오텍일수록 오히려 삑사리가 날 여유가 없다. 사이트 딱 한 곳에서 문제가 터져도 전체 데이터셋이 오염되는 건 순식간이다. ICH E6(R3) 가이드라인 역시 기업의 규모를 막론하고 각 임상에 얽힌 핵심 품질 요인(CtQ)과 리스크를 깐깐하게 평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업계 전반에 자본이 돌고 프로젝트가 늘어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임상시험 자체는 점점 더 압축적이고 가벼워지는 추세다. 현재 활성 상태인 임상 사이트 수는 고점 대비 8% 가까이 빠졌다. 스폰서들이 과거처럼 그물망 던지듯 여기저기 물리적 거점을 늘리는 대신, 과거 퍼포먼스 데이터를 들이밀며 환자 등록이 확실한 소수의 알짜 사이트에만 화력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자 동의서(eConsent)나 전자 임상시험 결과평가(eCOA), 원격 모니터링 같은 분산형 임상 요소가 섞여 들어가니 굳이 오프라인 공간에 연연할 이유도 줄어들었다. 비용 압박과 규제 당국의 깐깐한 리스크 관리 요구가 맞물리면서, 단순히 사이트 수를 늘려 몸집을 불리기보다는 탄탄한 데이터 인프라에 투자하는 쪽으로 인센티브 구조가 완전히 재편된 셈이다.

물론 덩치가 가벼워진 만큼 현장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는 더 까다로워졌다. 흩어진 사이트와 원격 시스템 환경에서 과거의 아날로그식 통제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결국 답은 중앙 집중식 데이터 통제와 적응형 모니터링에 있다. 산재해 있는 데이터를 하나의 직관적인 화면으로 압축하고, 잠재적인 이상 징후를 선제적으로 솎아내는 시스템 없이 지금의 속도전을 버텨내긴 어렵다. AI가 신약의 제형을 최적화하고 데이터가 임상의 군더더기를 예리하게 도려내는 지금, 시스템을 갖춘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간극은 앞으로 더욱 노골적으로 벌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