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의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역사상 최대 규모인 48개국 체제로 치러지는 북중미 월드컵 개막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가운데,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이 이번 주 토요일 오후 4시 서울에서 본선 무대를 밟을 최종 명단을 발표한다. 한국(FIFA 랭킹 25위)은 조별리그 A조에서 멕시코(15위), 체코(41위), 남아프리카공화국(60위)이라는 까다로운 상대들과 피 튀기는 생존 경쟁을 벌여야 한다. 명단의 뼈대는 이미 유럽과 미주 무대를 누비는 핵심 자원들로 채워질 공산이 크지만, 이들을 하나의 유기체로 묶어내기 위한 그간의 과정은 꽤나 험난했다.
가나전의 진땀승이 남긴 힌트, 그리고 오토 아도의 돌직구
현재 홍명보호가 어떤 축구를 지향하는지 파악하려면, 평가전 일정 동안 팀이 겪은 시행착오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가장 뚜렷한 단면을 보여준 것은 1-0 신승으로 끝났던 가나와의 맞대결이었다. 당시 대표팀은 중원과 공격진의 둔탁한 패스 워크, 잦은 일대일 돌파 실패로 경기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최전방에 섰던 오현규조차 공 한 번 제대로 잡아보기 어려울 만큼 철저히 고립되는 양상이었다. 다행히 후반 교체 투입된 이태석의 천금 같은 헤더 결승골로 승리를 챙겼지만, 경기력 자체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심지어 오토 아도 가나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일본의 수준 차이를 묻는 질문에 “일본이 브라질을 상대로 보여준 경기력을 보라. 솔직히 한국은 아직 그 정도 레벨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뼈아픈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외부의 싸늘한 시선과 달리 홍 감독의 평가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경기 내용이 꼬이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끝내 무실점으로 버텨내며 승리를 가져왔다는 사실 자체에 큰 점수를 줬다. 단기전인 메이저 대회에서는 화려한 축구보다 결국 한 골을 안 먹히는 끈적함이 생존을 담보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파라과이, 볼리비아, 가나를 상대로 챙긴 A매치 연승과 FIFA 랭킹 포인트는 덤이었다.
중원의 플랜 B와 역사적인 혼혈 선수 발탁 가능성
이러한 실리 축구를 완성하기 위해 홍 감독은 그동안 숱한 중원 조합을 실험석에 올렸다. 김진규, 원두재부터 권혁규, 서민우, 그리고 백승호까지 번갈아 기용하며 밸런스를 찾고자 애썼다. 여기에는 불가피한 변수도 컸다. 벤투호 시절부터 중원의 엔진 역할을 하던 황인범(페예노르트)이 지난 3월 발목 부상으로 쓰러진 탓이다. 현재 대표팀 의무진과 함께 재활에 매진하며 기적적인 월드컵 승선을 노리고 있지만, 그가 빠졌을 때 공수 연결 고리를 책임질 대안 마련이 시급했다.
이 빈자리를 메우며 미드필드에 거친 활력을 불어넣을 유력한 카드로 묀헨글라트바흐의 옌스 카스트로프가 급부상하고 있다. 피지컬을 활용한 저돌적인 플레이가 강점인 그는, 이번 명단에 이름을 올릴 경우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혼혈 월드컵 대표팀 선수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된다.
예비 멤버에서 스코어러로, 전방을 책임질 새 얼굴들
수비와 중원이 철저히 버티기 모드로 세팅된다면, 전방은 신구 조화를 통해 날카로운 한 방을 노린다. 전방의 중심은 단연 산전수전 다 겪은 캡틴 손흥민(LAFC)이다. 가나전 당시 소속팀의 MLS 플레이오프 일정 탓에 출전 시간을 조절받았던 그는 이제 자신의 네 번째이자 사실상 마지막이 될지 모를 월드컵 무대 출격을 앞두고 있다. 손흥민을 필두로 이강인(PSG),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등 확실한 주축들이 척추 라인을 형성하며, 뒷문은 조현우와 김승규라는 두 베테랑 골키퍼가 세 대회 연속으로 피 말리는 1선발 경쟁을 펼칠 전망이다. 송범근 역시 소속팀에서의 좋은 폼을 인정받고 있지만 큰 무대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벤치의 선택은 갈릴 수 있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득점 빈곤을 해결해 줄 젊은 공격수들의 약진이다. 지난 카타르 월드컵 당시 안면 골절을 당한 손흥민의 예비 멤버로 발탁돼 등번호 없는 유니폼을 입고 훈련장만 맴돌아야 했던 오현규(베식타스)는 이제 확연히 다른 위상을 자랑한다. 스코틀랜드와 벨기에를 거쳐 튀르키예 무대에 안착한 그는 올 시즌 15경기 8골을 몰아치며 위협적인 스트라이커로 성장했다. 전문가들 역시 “소속팀에서 꾸준히 득점포를 가동하며 주요 길목마다 한 방을 터뜨려주는 선수”라며 그의 파괴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여기에 올 시즌 셀틱에서 처음으로 두 자릿수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물오른 기량을 과시 중인 저돌적인 윙어 양현준의 발끝도 월드컵 무대에서 답답한 흐름을 깨버릴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이번 주말 최종 명단이라는 주사위가 던져지고 나면, 발탁된 K리거들과 코칭스태프는 곧바로 월요일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로 떠나 베이스캠프를 차린다. 조별리그가 열릴 멕시코 특유의 고지대 환경에 대비하기 위한 본격적인 담금질의 시작이다. 외부의 냉혹한 평가와 빡빡한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실리와 새 얼굴들을 챙겨 온 홍명보호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어떤 결실을 맺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