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사직 두산전. 롯데 자이언츠 우완 선발 나균안이 보여준 모습은 1군 프로 무대가 얼마나 가혹하고 무거운 자리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3회까지 피안타 단 2개, 무실점으로 쾌투하며 순항하던 그는 4회 선두타자 양의지의 총알 같은 강습 타구에 오른팔을 정통으로 맞았다. 벤치에서 김태형 감독이 직접 마운드로 올라와 교체를 권유했지만, 그는 공을 넘기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아드레날린의 장난이었을까, 아니면 선발투수로서의 지독한 책임감이었을까. 결국 다음 타자 박준순에게 우전 안타를 허용하며 무사 1, 2루 위기에 몰린 뒤에야 그는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다.
다행히 급하게 구원 등판한 박진이 후속 타자들을 묶어내고, 양의지가 주루사로 물러나며 롯데는 4회 실점 위기를 넘겼다. 이날 나균안의 최종 성적은 3이닝 4피안타 무실점. 롯데 구단 측은 뼈가 부러지는 등의 큰 부상은 피했으며 현재 아이싱 치료만 받고 있다고 전했다. 타구에 맞고도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던 그 묘한 오기는 꽤나 묵직한 잔상을 남긴다.
이렇듯 누군가는 타구에 맞아가며 처절하게 지켜내려 하는 KBO 리그. 그리고 지금, 바로 그 무대에 서기 위해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또 다른 베테랑이 있다. 메이저리그 통산 67홈런에 빛나는 35세 거포 최지만이다. 그가 마침내 독립구단 울산 웨일스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는 9월 KBO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국내 무대 복귀를 위한 본격적인 쇼케이스에 돌입한 것이다.
지난달 15일, 그가 울산 웨일스의 공식 훈련에 처음 합류해 타격과 재활 스케줄을 소화하던 날, 현장은 그의 몸 상태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려는 프로 구단 스카우트들과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빅리거의 귀환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파급력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첫 훈련 후 최지만의 감상은 꽤 흥미로웠다. 오랜만의 타격 훈련이었는데, 한국 공이 미국 공보다 실밥이 확연히 두꺼워서 타격음이나 손맛이 다르게 느껴지더라는 것. 우려했던 것보다 타격감이 나쁘지 않아 안도했다는 그는, 수많은 스카우트들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겠다는 의지를 덤덤히 드러냈다.
현재 무릎 재활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그의 몸 상태는 대략 70~80% 수준이다. 수비 훈련은 가능하지만, 무리해서 페이스를 끌어올리기보단 철저한 관리 모드에 가깝다. 보름 전쯤 컨디션이 뚝 떨어졌던 아찔한 경험을 한 탓에 지금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중이다. 그 스스로도 재활은 100% 완치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경기를 뛸 수 있는 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쿨하게 인정한다. 복귀 시점은 감독과 조율하겠지만, 몸이 허락한다면 예상보다 빠를 수도 있다는 자신감도 슬쩍 내비쳤다.
독립리그라는 낯선 환경, 띠동갑도 훌쩍 넘게 차이 나는 어린 선수들과의 동행은 어떨까. 억지로 일방적인 가르침을 주려 하기보단, 그저 동네 형처럼 자연스럽게 다가가 후배들이 궁금해하는 경험담을 풀어놓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프로라면 스스로 배우고 발전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뼈 있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공기 좋고 조용한 울산의 분위기가 과거 미국 마이너리그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는 대목에선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특유의 여유마저 묻어난다.
물론 장원진 울산 웨일스 감독은 이 귀한 자원을 함부로 굴릴 생각이 없다. 합류 자체는 반갑지만 부상 재발을 막기 위해 철저한 관리 모드로 기용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당장은 대타로 시작해 페이스가 올라오면 지명타자, 1루수로 출전 시간을 서서히 늘리며 실전 감각을 끌어올린다는 구체적인 플랜도 세워뒀다. 메이저리그에서 검증된 그의 펀치력과 풍부한 경험이 팀의 타선에 무게감을 더하고 득점력을 끌어올려 줄 것이란 기대와 함께 말이다.
결국 진짜 판은 9월 드래프트를 약 두 달 앞둔 6월 말부터 8월까지 이어질 퓨처스리그 경기들이다. 사실상 최지만의 단독 쇼케이스 무대나 다름없다. 이 시기, 그가 부상을 털어내고 건강하게 장타력을 뽐낸다면 올가을 신인 드래프트판은 그야말로 요동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이번 9월 드래프트의 아주 기묘한 관전 포인트가 하나 발생한다. 메이저리그를 누비다 돌아온 35세 베테랑 타자와, 역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꾸는 18세 고교 초특급 유망주들이 같은 드래프트 시장에서 얽히고설키는 묘한 그림이 그려진 것이다. 고교 최대어로 꼽히는 부산고 하현승은 해외 진출 대신 일찌감치 국내 잔류 및 드래프트 참가를 선언했지만, 덕수고 엄준상이나 광주일고 박찬민 등은 과감하게 빅리그 도전을 택했다. 서울고 김지우 역시 복수의 메이저리그 구단들과 물밑 접촉 중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들 초고교급 유망주들이 대거 태평양을 건너갈수록 최지만의 드래프트 순위는 반사 이익을 받아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상위 픽을 쥔 구단들의 머릿속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당장 1군 타선에 파괴력을 더해줄 검증된 즉시전력감 거포를 픽할 것인가, 아니면 구단의 미래를 책임질 18세 원석을 긁어볼 것인가. 파워를 갖춘 1루수가 목마른 구단이라면, 타격감이 살아있는 건강한 최지만은 판을 뒤흔들 강력한 게임 체인저다.
9월을 앞두고 밀려오는 부담감을 재활의 땀방울로 씻어내며 오히려 자신감을 채웠다는 최지만. 그가 쏘아 올릴 타구가 과연 어느 구단의 유니폼을 향할지, 그리고 그가 서게 될 KBO의 마운드는 나균안이 피와 땀으로 버텨냈던 것처럼 또 어떤 묵직한 서사를 쓰게 만들지 지켜보는 것도 올 시즌 한국 야구를 즐기는 또 다른 묘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