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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의 희로애락(喜怒哀樂) 그림으로 기록해요”응급실 당직, 의국에서 먹는 라면, 수술실 등 ‘드로잉 닥터의 병원 이야기’ 페이스북에 연재
양보혜 기자 | 승인 2017.05.17 09:49

선으로 재현된 신경외과 전공의의 병원 이야기가 의사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응급실 당직, 의국에서 먹는 라면, 수술실 등을 소재로 한 그림 아래엔 ‘지금도 그렇군요’라는 댓글이 달려 있다. 지난해 9월부터 페이스북에 연재 중인 ‘드로잉 닥터의 병원 이야기’는 전공의의 희로애락을 담은 한 편의 그림책 같다. 그림 그리는 의사로 불리는 김정욱 삼성창원병원 신경외과 전공의는 “지나온 길에 점을 하나씩 찍다보면 마치 그래프가 그려지듯 앞길이 조금 명확해 질 것 같아 그림일기를 쓰듯 연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 ‘드로잉 닥터의 병원 이야기’를 연재하게 된 계기는?

“의사로 일하다보면 당연하지 않은 일들을 당연하게 여길 때가 있다. 환자가 얼마나 고통이 심한지, 어떤 연유로 병원에 오게 됐는지는 생략하고, 상처나 질환만 보게 된다. 그래서 응급실에서 당직을 서고, 수술실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기록하려고 노력한다.”

 

- 기록해두면 행동이 달라지나?

“아무래도 그렇다. 아주 솔직하진 않아도 내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나가다 보면 그 길에서 우연히 타인의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반대로 내 손을 누가 잡아줄 수도 있다. 이렇게 반성(?)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기록하면, 그 기록 하나하나가 점이 되고, 점이 모이면 선이 돼 내가 얼마나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큰 방향을 알 수 있다. 방향이 명확하면 어떻게 행동하고 판단해야 할지 쉽게 결정할 수 있다.”

 

- 제목은 ‘병원 이야기’인데, 자세히 보면 ‘사람 이야기’다.

“(웃음) 그렇다. 의사와 간호사, 의사와 환자, 가족과 같이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뤘다. 그 이유는 인턴, 레지던트를 하면서 의사가 혼자서 성장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관계 안에서 보고 배우고 느끼며 ‘큰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인턴 때 수술실에 들어가면 연차가 높은 간호사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고, 환자의 감사 인사에 좀더 좋은 의사가 돼야겠다고 다짐도 했다. 그러다보니 ‘병원 이야기’가 제목이지만 ‘사람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 40회 이상 연재했는데, 어떤 작품에 가장 애착을 느끼나?

“응급실에서 본 환자의 발을 그린 그림(그림 1)과 배(그림 2·무풍지대) 그림이다. 무심하게 침대 밖으로 삐져나온 환자의 발을 본 뒤 그것을 계기로 연재를 시작했기에 의미가 있다. 반면 배 그림은 원래 바다에 대한 로망이 있어 꼭 한 번 그려보고 싶었던 것이라 애착이 간다.”

 

-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궁금하다.

“모눈 내지의 몰스킨 노트에 피그먼트펜으로 그림을 그린다. 가끔 채색을 하는데, 수채는 종이가 너무 울어 색연필로 채색한다. 그림이 완성되면 스캔을 떠서 파일로 보관한다.”

 

- 왜 드로잉을 선택했나?

“그림을 정식으로 배워본 적이 없다. 그래서 스케치하듯 쓱쓱 그릴 수 있어 드로잉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보통 글에 맞는 그림을 그리나? 그림에 맞는 글을 쓰나?

“둘 다인 것 같다. 평소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휴대폰에 메모한 뒤 주말에 노트에다 푼다. 그런데 글이 먼저 떠오를 땐 이미지 구상에 시간을 많이 쓴다. 그래서 그런지 그림을 그리는 오른쪽 페이지가 빈 곳이 더 많다.”

 

- 시간이 얼마나 드나? 병원 일만 해도 바쁠 것 같은데….

“주중에는 근무하고 주말에 여유가 있을 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방에 앉아 집중하면 1시간 정도 소요되는 것 같다.”

 

- 왜 페이스북을 골랐나?

“원래 블로그에 글과 그림을 올렸다. 블로그는 특성상 연재보단 모음에 가까운 느낌이 든다. 그러던 중 예전에 삽화를 그려줬던 책의 저자가 페이스북에 그림을 올려볼 것을 제안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을 거라며. 페이스북 사용법이 어려워 한참 뒤에 올렸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놀랐다.”

 

- 독자 수가 상당히 많다.

“감사하다. 쌓이는 ‘좋아요’를 보며 혼자 기뻐서 웃었던 적이 있다.”

 

- 혹시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나?

“‘이런 의사가 됐었어야 했는데…’이다. 나는 항상 좌충우돌하며 실수도, 실패도, 좌절도 많이 겪기에 반성적 차원에서 글을 올리는데, 그 댓글은 나를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방황은 나의 힘”

어린 시절부터 의사가 꿈이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어쩌다 보니 의대에 입학했고, 학생 실습 때 수술은 절대 하지 않을 거라 다짐했지만 수술실용 크록스를 종류별로 바꿔가며 7년째 신고 있다”고 말했다. 의대 시절 의사가 적성에 맞는지 알기 위해 친구들이 교과서에 파묻혀 살 때 휴학을 하고 방황을 시작했다.

 

- 연재물을 보면서, 의사가 원래 꿈인 줄 알았다.

“하하하…, 그렇지 않다. 의사가 꿈인 사람을 존경한다. 의사가 꿈이 아니었기에 이 길이 내게 맞는지 알기 위해 고민을 빙자한 방황을 많이 했다.”

 

- 가출이라도 했나?

“그런 건 아니고, 휴학을 했다. 친구들이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할 때 옷 장사를 하고, 교보문고 아르바이트생 채용공고에 이력서를 내기도 했다. 혼자 그린 그림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하고, 책에 삽화도 그렸다.”

 

- 방황 후 의사가 자신의 길이란 확신이 들었나?

“사실, 고민이 끝나지 않았다. 신경외과를 선택한 것도 이런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인턴 1년을 재밌게 보내고 나니 어느 과를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잘 모르면 의사 ‘짓’을 가장 뻑적지근하게 하는 과에 가자는 생각이 들어 ‘빡세지만, 훈훈한’ 우리 의국을 선택하게 됐다.”

 

-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려고 했다는 글을 봤는데….

“하하하…, 그렇다. 의대 6년간 단 한 번도 수술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정신건강의학과만 관심 있었고, 내 길은 오로지 그곳에만 있다고 여겼다. 사람의 마음을 다듬어주는 의사가 되는 상상을 하며 버텼다. 그런데 사람 일을 누가 알까? 특별한 계기는 없었지만 15도씩 12번 움직이고 나니 180도 방향이 바뀌어, 지금은 신경외과 레지던트가 돼 있다.”

 

- 뇌 안에도 ‘정신’이 있으니, 아주 무관한 과라고 볼 순 없다.

“글에도 쓴 적이 있는데, 나는 마음을 읽는 머리 대신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뇌를 만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만지는 뇌 안에는 정신이 들어 있다. 정신은 삶을 결정짓는다. 뇌신경을 만지는 신경외과 의사는 다른 의미에서 정신을 마주한다고 본다.”

“드로잉 닥터의 군병원 이야기 나와?”

어느덧 전공의 4년차. 보드를 딴 후의 계획을 묻자 “병역의 의무를 이행할 것”이라고 답했다. 군의관이나 공보의가 돼서도 그곳에서 경험한 내용을 글과 그림으로 연재할 것이라고.

 

- ‘드로잉 닥터의 병원 이야기’는 언제까지 연재할 계획인가?

“전공의를 마치면 일단락짓게 될 것 같다. 군의관이나 공보의로 변신하면 그땐 그곳에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가지고 새롭게 연재할 것 같다. 드로잉 닥터의 군병원 이야기 정도? 그 뒤는 또 전문의로서의 삶이 기다리고 있고. 소재가 무궁무진하니 제목이 약간 변하더라도 점찍기는 계속 이어질 것 같다.”

 

- 드로잉 이외의 방식에 도전할 생각은 없나?

“개인적으로 제니 셰빌의 작품을 좋아한다. 언젠가 유화를 배워서 제니 셰빌처럼 깊고 센 이미지로 다가오는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기회가 되면 조소도 해보고 싶다.”

 

-연재물을 모아 출판을 해도 좋을 것 같다.

“페이스북에 연재를 한 뒤 감사하게도 좋은 제안이 들어왔다. 부끄럽지만 그래도 책으로 나온다면 기쁠 것 같아 논의해볼 계획이다.”

 

양보혜 기자  bohe@mpres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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