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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를 만든 작고 강한 미국 대학 이야기[의사와 책] 《내 인생을 바꾸는 대학》을 읽고 생화학자에서 의학교육자로 진로 바꿔
엠프레스 편집팀 | 승인 2017.05.10 13:22

‘에이, 진짜 그런 학교가 있을까?’

《내 인생을 바꾸는 대학》이라는 책 제목을 처음 대했을 때의 느낌이었다. ‘혹시 책 판매를 위해 원서의 제목과 별 관계가 없는 제목을 붙인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뒤따랐다. 하지만 《Colleges that Changes Lives》라는 원서 제목을 보고 나니 호기심이 마구 발동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대학이기에 인생을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열린 대학교육의 힘 일깨워준 작고 개성 있는 40개 대학교

의학을 공부한 후 과학자로서의 인생을 살기로 결심하고 기초의학자의 길을 선택했지만 교수생활 10년이 지날 무렵 만난 이 책은 필자의 인생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학에서 교육자로 지내온 시절에 대한 반성과 함께 ‘교육’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가지게 됐다. 그리고 결국에는 생화학자로서의 인생을 그만두고 의학교육학 교수로 길을 바꾸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대학이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의문과 기대를 동시에 가지고 구입한 책은 500쪽이 넘는 부피를 자랑하고 있었다. 내용에 호기심이 가기는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2008년 12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그리고 태평양을 건너갈 무렵 결심을 했다. 미국에 갈 때마다 최대한 시간을 내어 이 책에 나오는 학교를 모두 방문하기로 말이다.

그 해 첫 여행에서 뉴멕시코주 산타페에 위치한 세인트존스 대학(St. John’s College), 텍사스주 셔먼에 위치한 오스틴 대학(Austin College), 텍사스주 조지타운에 위치한 사우스웨스턴 대학(Southwestern University)을 비롯해 `지금까지 이 책에 나오는 대학교를 방문하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 ‘당신이 대학에 관하여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게 할 40개 학교(40 schools that will change the way you think about colleges)’는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하다.

비행기에서 읽은 한 권의 책이 필자의 인생관과 취미를 바꿔 놓은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각자의 인생은 각자가 개척해가기 나름이라고 생각했을 뿐, 교육의 힘이 개인의 인생을 바꿔 놓을 만큼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은 교육의 힘은 위대하고, 교육방법은 엄청나게 다양하며, 교육을 통해 개인을 변화시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음을 보여 줬다.

2000년대 초,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필자는 “서양인들은 예약을 하고 찾아가는 것이 예의다”라는 말을 곧이 믿었다. 그러나 2008년부터 내 인생을 바꾸는 대학을 찾아 헤매는 필자의 행로에는 예약이 필요하지 않았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지리적 광범위함과 이 책에 소개된 대학이 워낙 넓게 분포한 까닭에 지금까지 20개에 채 못 미치는 학교를 방문했다. 그런데 한 번도 예약을 하지 않고 찾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걸 얻지 못한 경우는 없었다.

처음 방문한 뉴멕시코주의 세인트존스 대학에서 한 학생에게 “이 학교생활에 만족하느냐?”, “몇 명의 교수가 너의 이름을 알고 있느냐?”, “이 학교생활에 만족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본 것을 계기로 모든 학교에 방문할 때마다 무작위로 약 10명의 학생을 만나 이와 같은 질문을 하면서 학교 분위기를 파악하곤 한다. 세 번째 질문의 대답에 따라 서로 다른 내용으로 이야기를 해 본 후 안내실을 찾아가 필자가 원하는 정보를 전해 줄 사람을 찾곤 한다.

“나는 한국에서 온 교수다. 로렌포프가 쓴 《Colleges that Changes Lives》 책을 읽고 이 학교에 관심이 생겨서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이 책에 소개된 너희 학교에 대한 내용은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으므로 나는 이 학교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다. 국제 업무 담당자나 입학 정책 담당자를 만나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하노라면 필자가 마주친 모든 직원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도와주려 했다. 그 와중에 워싱턴주 올림포스의 에버그린 주립대학(Evergreen State College)에서는 1972년 평택에서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다는 국제 업무 담당자를 만났고, 오레곤주 포틀랜드의 리드 대학(Reed College)에서는 그 학교 졸업 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MBA를 마치고 맥키지와 골드만삭스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모교에서 일하기 위해 이를 뿌리쳤다는 입학담당 부학장(Associate Dean)을 만나 융숭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를 배출한 리드 대학의 고전 100권 읽기

세인트존스 대학에서 고전 100권 읽기를 하는 목적을 간단히 소개하면 단순히 책 내용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이 씌어진 배경과 시대상황, 그 책이 고전으로 남게 된 이유,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에 대해 심화학습을 함으로써 어떤 시기, 어떤 상황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방식은 다르지만 리드 대학 역시 고전 100권 읽기를 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전교생이 1500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학교지만 한 학년이 들어갈 수 있는 강당에 미국 최고의 강사를 불러 고전에 대한 강연을 한다고 했다. “고전은 잘 가르치지 않으면 지루한 이야기가 되기 쉬우므로 매년 미국 각지에서 비행기표와 2박 3일 숙식을 제공해 가면서 최고의 강사를 불러와 고전에 대해 이야기 나눌 기회를 가진다. 우리는 작은 학교여서 100권의 고전을 모두 잘 가르칠 교수를 확보하기 어려우니 최고의 강사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스티브 잡스가 중퇴한 학교로 유명한 이 학교 학생들은 졸업논문을 준비하면서 4학년을 보낸다고 했다. 우리나라 대학이 1년간 수업을 하지 않고 논문 준비를 위해 개인적으로 교수와 만나는 시간을 보내면서 수업료를 받는다면 교수와 학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학교의 설명은 “1년간 논문을 쓰기 위해 학생들은 계속해서 지역사회와 접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졸업 후 자신이 진출하게 될 사회를 이해하고, 이 사회에서 어떤 구성원이 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훌륭한 구성원이 될 준비를 한다”는 것이었다.

일리노이주 휘턴에 위치한 휘턴 대학(Wheaton College)에서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토요일 오전만 되면 거의 모든 학생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학풍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 물으니 그 학교의 역사를 아는지 되물었고, 사전에 알아본 내용이므로 자신 있게 1860년에 세워진 걸 알고 있다고 하자 “150년이 넘는 역사가 지나는 동안 면학분위기 조성을 위해 우리가 시도한 방법이 한두 가지가 아니므로 간단히 가르쳐 줄 수는 없다. 우리는 오랜 기간을 열심히 노력했고, 그 결과 오늘날 토요일 오전이면 모두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했다. 마침 그 학교에서 만난 고등학생 한 명은 자신이 휘턴에 살고 있으며, 지금은 휘턴 대학교 학생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고, 어렸을 때부터 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꿈꾸며 자랐지만 경쟁이 치열하므로 입학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고 했다. 왜 이 학교에 오고 싶은지를 물으니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멋있고, 나도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대학생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10년째 ‘내 인생을 바꾸는 대학’을 방문한 경험은 진짜로 인생을 바꿀 만큼 교육을 잘 하는 대학이 있고, 그 구성원들이 모두 즐겁고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으며, ‘교육’이란 얼마든지 창의적인 방법 가능한 종합예술과도 같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험은 과학자에서 교육자로 인생을 바꾼 필자에게 교수로 살아가는 것에 큰 만족감을 주고 있으며, 그래서 필자는 지금도 기회가 될 때마다 배울 게 있는 대학을 방문하면서 교육에 대한 자극을 받고, 교육자로서의 인생에서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

 

예병일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생화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유학시절에 전기생리학, 영국 유학시절에 의학역사를 공부했고, 현재는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의학에 담긴 인문학적 측면을 연구하고, 이를 이용해 의학을 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저서로 <의학사 노트>,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등이 있다.
 

예병일(연세대 원주의대 교수)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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