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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녀에게 자신의 감염사실 숨겨달라는 환자바쁜 진료실에서 마주치는 윤리문제 해결법
엠프레스 편집팀 | 승인 2017.05.02 07:00

검진센터에서 검진결과를 설명하는 의사 K씨, 혼전 종합검진을 받은 커플 중 M군으로부터 자신의 B형 간염보균 상태를 약혼자에게 알리지 말아달라는 부탁 전화를 받았다. 환자의 비밀보장원칙과 약혼녀의 안전권, 혹은 알권리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임상 의사들 윤리문제 해결 위한 7가지 단계

톰 뷰챔프(Tom Beauchamp)와 제임스 차일드레스(James Childress)가 정립시킨 의료윤리의 4원칙은 이 분야에서 가장 널리 통용되는 황금률이다. 4원칙은 자율성존중, 악행금지, 선행, 정의의 관점에서 개별 사례를 분석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실제 진료실 현장에서는 이러한 원칙들이 서로 상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암환자에게 진단명을 통보하는 것은 환자의 자율성은 존중하는 것이지만 자칫 심약한 환자를 충격에 빠지게 해 해로움을 끼칠 수 있다. 이렇게 윤리원칙들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에 어떤 원칙을 중시할 것인가 하는 것은 문화적, 사회적 배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서양의 경우 자율성의 원칙이 다른 어느 원칙보다 우선하는 경향이 지배적인 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권은 환자의 자율성보다는 선행의 원칙이나 온정적 간섭주의(paternalism)를 더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캐나다에서는 수혈거부 카드를 소지한 여호와증인 환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환자의사를 무시하고 수술한 의사가 실형을 선고받은 예가 있다. 암진단의 경우 환자를 제외한 제 삼자에게 먼저 알리면 의사가 고소를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암진단 사실을 가족들에게 먼저 알리고 환자에게 진실을 말할지 여부를 의사와 가족들이 결정하는 사례가 흔하다. 이렇게 의료윤리의 원칙들이 서로 충돌하거나 개념이 명확치 않은 경우의 어려움에 대한 대안으로 필립 허버트(Philip Hebert) 박사는 임상 의사들이 부딪치는 윤리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7가지 단계를 제시했다(표1 참고).

B형 간염보균 사실을 숨겨달라는 M군의 사례를 적용해보자. 이 경우, 의사의 결정에 따라 다양한 윤리문제들이 발생한다(1단계).  환자의 비밀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하는 절대원칙인가? 간염보균자의 성적 파트너는 환자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들을 권리가 있는가? 등으로 윤리이슈를 분명히 한다(2단계). 약혼자에게 간염감염 사실을 알릴 것인가 말 것인가 혹은 제 삼자를 통하여 알릴 것인가 등으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거해본다. 이때 흑백논리로 흐르지 말고 다양한 스팩트럼의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3단계). 환자의 비밀을 지켜주면 자율성은 지켜주는 것이지만, 약혼자에게 악행을 행하는 셈이 된다. 반대의 경우는 악행금지의 원칙은 지키게 되지만, 환자의 자율성을 망치게 된다(4단계). 윤리적 원칙 이외에 환자의 간염활동성 여부, 약혼자의 성향 등 의학적, 사회적 요소들을 고려한다. 이제 무엇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책인지를 당신의 판단에 근거하여 선택해본다. 당신의 결정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왜 당신의 선택이 최선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5단계). 당신의 결정은 앞으로 다른 유사한 경우에도 변화하지 않을 것인가? 만일 약혼자에게 환자의 감염을 알려야 한다고 결정했다면 이를 다른 유사한 사례에도 일반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의 선택이 오늘밤 편안히 잘 수 있을 정도로 거리낌이 없는가?  당신의 양심과 감정의 외침은 당신의 판단이 옳았는가에 대한 이성적인 잣대다.  만일 당신의 결정이 당신의 양심과 감정을 불편하게 한다면 비슷한 증례를 찾아보거나 다른 의료윤리 전문가, 윤리위원회 등에 자문을 의뢰하라. 이제, ‘공개원칙’(publicity rule)에 당신의 경우를 적용시켜보라. 공개원칙이란 ‘당신의 선택이 신문이나 방송에 공개돼 모든 사람이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같은 선택을 내리겠는가?’ 하는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는 것이다(6단계). 이제 당신이 모든 것을 고려해서 옳다고 결론지은 대로 행하라(7단계).  당신이 가볍게 혹은 일시적인 감정에 의하여 문제를 다루지만 않았다면 당신이 결심한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 의사-환자 관계를 위협하는 3자 개입

최근 들어 전통적인 의사-환자 관계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바로 환자의 자율성 신장과 제 3자인 정부/민간보험회사의 개입이다. 의사가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윤리원칙이지만, 의학적 적응증에 벗어나는 시술을 환자가 의사에게 요구할 수는 없다.  환자의 자율성이란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이지 주치의에 대한 권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는 진료에 있어서 전문가적 판단 안에서 자유롭게 행동해야 하며 의사 자신의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위협하는 어떤 요구도 거절할 권리가 있다. 국가나 보험회사 등 제 삼의 지불자가 진료의 표준안을 마련해놓고 이를 강요하게 되면, 의사는 이들의 하수인 역할로 전락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신뢰와 선의를 바탕으로 한 의사-환자 관계는 여전히 가장 우선권이 높은 고려요인이다. 4원칙도 7단계도 모두 골치 아프다고? 그렇다면 “세상 모든 사람과 모순을 일으키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자기 자신과의 모순은 범하지 말라”는 소선생(소크라테스)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환자를 대면하자.

 

 

정유석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다. 현재 단국대 의대 가정의학교실 주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의료윤리학회 교육이사직을 맡고 있다.
 

정유석(단국의대 가정의학교실 주임교수)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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